[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용서 (2010.11.08)

작성자
jesus_admin
작성일
2020-03-24 14:31
조회
552

마태복음 6장 14~15절

어느 청년 이야기입니다. 친한 선배가 사업을 하는데 “도장 한 번만 찍어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랍니다. 도장 한 번 찍어 주는 게 무슨 대수인가 싶어 쿡 찍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뒤로 소식이 뚝 끊겼습니다.

그 후 몇 년 지나 차압이 들어오고 그걸 갚는 데 수년 간 죽을 고생했답니다. 어렵게 고생해 해결하고 나니 어느 날 그 사람이 잘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복수를 하려고 한 걸음에 달려갔답니다.

집안에 들어서니 선배가 “아이고, 동생 왔는가. 반갑다”며 자기 부인에게 집안 동생이라고 인사를 시키더랍니다. 부인은 상다리 부러지게 상을 내놓았고 앉아서 밥을 먹는데 그동안 쌓인 울분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아들이 들어오더랍니다. 선배가 작은아빠라고 소개를 하자 아이가 넙죽 인사하고 무릎 위에 앉았습니다. 그 청년은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온 울분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정신없이 밥만 먹었습니다. 그리곤 집에 돌아오면서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후 다시 선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망했지만 지금은 사업이 풀리고 있어 그러잖아도 돈을 준비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답니다. 문제가 풀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때 참지 못하고 폭탄선언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피차 끝나는 것이지요.

누구든지 사건과 내용이 어떻든지 용서하는 자에게 사는 길이 열립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 2:10∼11)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면 예수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용서는 우리의 자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를 해놓고 상대가 바뀌지 않아 또 앙금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4)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평생 동안 계속적으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용서했으니 너도 요만큼 해야지.’ 이러면 오히려 더 큰일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산하지 마십시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 11:25) 기도할 때 마음의 응어리가 있거든 이렇게 고백하세요. ‘하나님, 저에게 이런 상처가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괴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여, 용서하겠습니다. 이거 지워버리게 하소서. 잊어지게 하소서.’

이렇게 용서하면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우연은 결코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결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우리의 영혼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우리 속의 응어리를 반드시 내가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내 속에 있는 응어리를 다 지우고 새롭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수훈 목사(당진동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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