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교회가 하루라도 구원 현장·복음 전하는 일 놓치면 목적 잃어 (2019.05.13)

작성자
jesus_admin
작성일
2020-04-03 17:09
조회
1070
[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4> 전도 현장에 부지런히 나가라

이수훈 당진동일교회 목사(왼쪽)가 1996년 8월 거리전도를 통해 만난 성도들과 함께했다. 당진동일교회는 그해 11월 폐가에서 시작됐다. 당진동일교회 제공


목회자들이 사명을 잊게 하는 것은 사단의 무서운 전략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는 존재 목적과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본분을 망각하면 결국 쭉정이가 된다. 아담은 하나님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말에 속아 자신의 본분을 잊고 선악과를 먹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잃었다. 모세와 동역한 고라 자손은 광야 생활 37년쯤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땅이 그들을 삼켜버리는 징벌을 받았다.(민 26:10)

사도 바울의 위대한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는 자신이 받은 사명을 위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사명 품은 사람과 동행하시는 하나님

바울 사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어렵고 힘든 길이었다. 그때 바울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며 묵묵히 그 길을 걸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았다. 누군가가 전도하기를 기다리는 목회자가 아니었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구원은 없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전도현장을 누볐다.

교회는 하루라도 영혼 구원 현장, 복음 전하는 일을 놓치는 순간에 부르신 목적을 상실한다. 나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에게 설교하는 사역을 복음 전하는 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 매일 다짐했다. 한국교회는 어쩌면 항상 힘써야 할 복음 전파를 뒤로한 채 일련의 전도 행사로 대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소위 새생명축제다. 봄과 가을로 전도행사를 하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교회 마당을 한번 밟은 사람은 또다시 올 거야’ 하는 마음으로 전도행사를 하는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행사로 부흥했다는 교회를 만나본 적이 없다. 전도군사학교 훈련 때마다 ‘전도 행사에 속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는 목사가 복음 전도의 현장에 부지런히 나갈 때 살아난다.



교회개척에 뜻을 같이한 가족이 96년 12월 비닐하우스 교회에서 특송을 하는 모습. 당진동일교회 제공


나갈 때 예비 된 일꾼을 만난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오늘날 교회와 달랐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예배만 참석하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자부한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가.

하용조 목사님께서 90년 대 매주 목요일마다 교회개척을 꿈꾸는 목회자를 모아놓고 세미나를 인도했다. 그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에 대한 부담감, 복음에 대한 부담 없이 지내는 교회를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울부짖으셨던 예수님의 제자가 맞습니까.”

현장에서 복음전파를 하지 않는 목회자에 대한 애절한 호소였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 목사님께 여쭤봤다. “어디로 가서 개척하는 게 좋을까요.” 한참을 땅을 바라보시더니 하셨던 말씀이 있다. “루디아를 찾아가야지요. 예수님이 예비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종이라면 그 양도 예비해 두셨을 것입니다.”

하 목사님의 말씀처럼 다른 길은 없었다.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틈만 나면 교회개척의 꿈을 설명했다.

당진동일교회를 개척하기 전 이야기다. 경기도 안양 인덕원사거리 먹자골목에서 24세 자매와 이야기를 했다. 자매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줬다. 지금 그 자매는 우리교회 권사가 됐고 남편은 장로가 됐다. 하나님은 젊은 부부를 그렇게 평생 동역자로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서 전하는 현장에서 예비된 일꾼을 만나게 하셨다. 만남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말이다.

바울 사도가 문밖 강가에 나가 여자들에게 말할 때 루디아를 만났다. 그 결과 교회가 세워졌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교회 안에 머물면 복음이 힘 잃어

목회자는 거리로 나가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시간이 주어지면 나가고 또 나가야 한다. 목회자가 할 일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다니는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복음도 멈춘다는 심정으로 다녀야 한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4~8)

금나라를 무너뜨린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후손들이 말 등에서 내려와 저 성안에서 하느작거리며 거닐기 시작할 때 이 나라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훗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오늘도 우리는 나가야 한다.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 복음도 힘을 잃고 전도의 길도 막힌다.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질 때까지 가고 또 가야만 한다. 제발 나가자.

기사링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77441